김학철전집4-태항산록-(수필)아름다운 우리 말

더좋은래일 | 2024.05.08 15:34:37 댓글: 1 조회: 100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6991


수필


아름다운 우리 말


전에 내가 김승옥, 허분숙 두분과 이웃하여 살고있었을 때의 일이다. 그 두 댁의 막내아들들인 해민이와 동찬이는 나하고 어찌나 잘 사귀였던지 노상 우리 집에 와 살다싶이 하였었다. 둘이 다 너덧살씩 먹어서 데리고 놀기 딱 좋았으므로 우리 내외에게는 아주 좋은 심심풀이로 되였었다. 내가 놀리느라고

<<혜민이 좋은 놈이야 나쁜 놈이야?>>

물어보면 해민이는 언제나 서슴없이

<<좋은 놈!>>

하고 잘라말하는것이였다.

<<그럼 동찬이는?... 좋은 놈? 나쁜 놈?>>

<<좋은 놈!>>

두놈이 다 <<좋은>>과 <<나쁜>>을 분간하는데만 정신이 팔려서 그 밑에 <<놈>>이 붙은것은 미처 생각들 못하였었다. 우리 내외가

<<그래그래 좋은 놈! 좋은 놈!>>

하고 하하 웃으면 철 없는 두놈은 무슨 영문도 모르면서 제딴엔 우습다고 손벽들을 치면서 덩달아 캐들캐들 웃는것이였다.

우리 말의 <<놈>>은 본시 남성을 지칭하는것이자만 귀여운 처녀 아이들에게도 겸용되여 어른들이 그 딸애기나 손녀애기를 보고

<<요놈.>>

또는

<<아 요런 깜찍한 놈 좀 봤나!>>

하는것을 우리는 듣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놈>>은 애칭으로 되는것이다. 바꿔말하면 <<좋은 놈>>으로 되는것이다.

<<댁의 따님은 어디서 일하지요?>>

<<선생질한답니다.>>

<<그럼 저 댁 아드님은요?>>

<<의사질한답니다.>>

이런 대화를 들을적마다 나는 세상이 딱 귀찮은 생각까지 들군 한다.

(어쩌면 저다지도 말의 교양들이 없을가!)

도적질, 협잡질, 행악질, 화냥질 등등등... <<질>>은 부정적행위와 련결되는 수가 많은 말이다. 그런 말을 하필이면 싱싱하고 점잖은 직업 같은데 갖다붙여서 말씨에 꾀까다로운 사람들-김학철이 같은 사람들-이 듣고 세상이 다 귀찮아지게 만들어줄것은 뭇엇인가? 정 할수 없으면 <<노릇>>으로 대체라도 할것이지! <<선생노릇>>, <<의사노릇>>-이렇게.

나는 자기 남편을 <<동무>>라고 부르는 녀자를 보면 얼른 귀를 틀어막고 오금에서 비파소리가 나게 도망질을 쳐버리는 성질이 있다. 그리고 자기 안해를 <<동무>>라고 부르는 남자를 보면 대번에 손이 근질근질해나는 성질도 있다-귀싸대기를 한대 갈겨주고싶어서 말이다.

우리 안사람에 대해서도 나는 차차 불만이 커가는중이다(이 불만이 언제 일대 폭발을 일으킬는지는 물론 하느님만이 알고계신다). 시집을 갓 왔을 당시에는 고운 서울말씨로 댕갈댕갈 지껄여서 내 귀에 음악적인 희열을 갖다주던것이 이제 와선 아주 글러먹었으니까 말이다. 그전에는 내가 저녁때 늦게 들어오면 의례 고운 서울말씨로

<<진지는요?>>

물으며 부지런히 일어나 행주치마를 두르군 하였었다. 그러던것이 이 근년에 와서는 그 아름다운 말씨-<<진지>>를 도태하고 시금털털한 말투로

<<식사?...>>

하고-그 무거운 엉뎅이를 방바닥에 붙인채-물어보기가 일쑤이니... 이게 그래 현저한 퇴보가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식사>>밑에 <<는요>>마저 생략된데 류의하시라.)

<<식사>>는 일본말의 <<쇼꾸지>>를 직역한것으로서 우리 민족 고유의 말인 <<진지>>에 비하면 기품이 퍽 떨어지는 말이다. 억하심정으로 이렇게 내리먹기를 좋아들 하는지. 제 좋은 비단옷을 마다하고 남의 나라에서 들여온 마대옷을 걸치기를 좋아들 하시는지. 이것도 하느님만이 알노릇이다.

홍명의선생의 <<림꺽정>>에서는 전라도기생 계향이도 서울말을 하고 평안도기생 초향이도 서울말을 하고 그리고 서울기생 소홍이도 역시 서울말을 한다(이것은 물론이다). 리기영선생이 그 작품들에서 서울말과 지방의 사투리말을 놀랄만큼 능숙하게 구분하여 구사하는데 비하면 이것은 의론의 여지가 없는 부족함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림꺽정>>의 인물들이 쓰는 말은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 민족의 말-자랑스러운 말이다.

<<림꺽정>>에는 남북조선 어느 사전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멋진 어휘들이 거의 무진장으로 들어있어서 우리 말의 <<어휘대사전>>이 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지난번 내가 어느 졸작소설에서

<<저는 이미 마음속에 정한 사람이 있에요>>라는 말을 썼더니 편집자는 친절하게도 <<있에요>>를 <<있어요>>로 고쳐놓았었다. 물론 <<있에요>>와 <<있어요>>는 같은 말이다. 그러나 <<있에요>>에는 아름다운 녀자의 <<맛>>이 들어있다. 이것은 녀자뿐만 아니다. 남자도-젊은 남자가-<<녜 제가 그랬에요>> 하는것이 <<네 제가 그랬어요>>하는것보다 훨씬 <<감칠맛>>이 있는 법이다. 내 말이 미덥잖거든 <<림꺽정>>을 한번 뒤져보라. 맨 <<에요>>투성일테니. <<림꺽정>>에서는 황천왕동이의 안해-스물몇살 먹은 옥련이가

<<제가 무슨 생각이 있에요.>>

라는 말을 하는가 하면 옥련이의 남편-서른몇살 먹은 황천왕동이도

<<제가 무슨 재주루 그걸 알아내겠에요.>>

라는 말을 한다. 책을 뒤져보기가 귀찮거든 그럼 서울방송을 한번 귀담아 들어보라. 거기서 <<했에요>>, <<있에요>>를 쓰는가 안쓰는가.

아름다운 우리 말은 작자, 역자만이 배워야 할것이 아니라 편집자도 역시 배워야 할것이다. 최소한으로 남의 이미 써놓은 아름다운 말을 애써 깎거나 고쳐서 밉게 만들지는 말아야 할것이니까 말이다. 례컨대 우리 편집자가 <<아차실수>>란 우리의 말을 몰라서 <<아차, 실수>>로 고쳐놓는다면 이것도 유감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연변에서 번역제작한 일본텔레비죤영화 <<오신>>에서 며느리를 <<마님>>이라고 하고 시어머니를 <<큰마님>>이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잘못이다. 이런 경우에 며느리는 <<아씨>>, 시어머니는 <<마님>>이 되여야 할것이다. 그리고 딸은-어려서는 <<애기>>라고 부르고 커서는 <<아가씨>>라고 불러야 할것이다. 이 <<오신>>에 사람을 크게 웃기는 웃음거리가 또 하나 있는바 그것은 어린 녀주인공 오신이 부자집에 가 드난살이하는것을 <<머슴살이>>를 한다고 한것이다. 머슴은 남자가 사는것이다. 녀자가 드난살이하는것은 <<안잠>>을 잔다고 해야 한다. 남자는 <<머슴군>>, 녀자는 <<안잠자기>>-이것은 우리말의 최저한의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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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니201310 (♡.163.♡.142) - 2024/05/19 15:23:35

우리말 이쁘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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