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4-태항산록-(수필)궁녀

더좋은래일 | 2024.05.08 15:37:08 댓글: 1 조회: 113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6994


수필


궁녀


궁녀란 우리가 다 알다싶이 궁중에서 황제, 황후 또는 왕과 왕비의 시중을 드는 시녀 즉 하녀이다. 동시에 또 그녀들은 황제나 왕의 후보첩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지 첩으로 되는 <<영광>>을 누릴수 있는것은 백에 하나도 있으나마나하다. 백의 아흔아홉 가량은 처녀의 몸으로 평생 수절을 하다가 늙어 꼬부라져서 처녀귀신이 되기 마련이다. 궁녀는 환관 즉 내시외의 남자와는 절대로 접촉을 못하게 되여있다. 그녀들이 접촉할수 있는, 온전한 남자란 오직 황제나 왕 하나뿐인데 그 비례가 100대1, 300대1, 지어는 500-600대1이나 되다보니 사내구경을 한다는것은 하늘의 별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래서 이런 우스운 이야기까지 있다.

궁중에 봄이 찾아드니 궁녀들이 모두 원인 모를 병에 걸려서 얼굴들이 노래가지고 시들시들 시들어갔다. 크게 념려한 황제가 시의를 불러다가 치료할것을 명한즉, 궁녀들의 병이 어찌하여 난것을 짐작하는 시의가 품하기를

<<신의 처방대루 약을 쓰기만 하면 병을 꼭 고칠수는 있사오나 페하께서 윤허하옵실는지?>>

한즉 황제의 말이

<<오냐 념려 말구 어서 처방이나 내라, 병을 고칠수만 있다면야 무슨 약인들 못쓰랴.>>

황제의 윤허가 내린 뒤에 비로소 시의가 써바치는 처방을 들여다본즉 인삼도 록용도 다 아닌 단방(单方)으로

<<장정(壮丁) 20명>>이다. 황제가 내심 적이 놀랍기는 하였으나 황제의 체면을 식언(食言)은 할수 없어서 처방대로 하라고 어명을 내렸다.

어명을 받은 도승지는 지체없이 어림군 즉 근위군에서 장정 20명을 골라뽑아서 내전으로 들여보내였다.

한달이 지났다.

황제가 하회를 보려고 내전에를 듭시니 그 노랗게 시들어가던 궁녀들의 얼굴이 모두 도화빛으로 피여나서 청춘의 아름다움이 마구 넘쳐나는듯 생기가 발랄들 해졌었다. 황제가 속으로 시의의 그 단방약처방이 효험이 대단하다고 탄복하면서 내전을 두루 살펴보는중에 괴상야릇한것이 그 눈에 띄웠다. 양지바른 담장밑에 한무리의 피골이 상접한 아편쟁이모양의 사내들이 쪼크리고 앉아서 오돌오돌 떨면서 볕들을 쪼이고있는것이다. 깜짝 놀란 황제가

<<아니, 저건 대체 무엇하는것들이냐?>>

하고 뒤에서 모시고 따라오는 상궁 즉 궁녀장을 돌아본즉 그 상궁이 상끗 웃고 아뢰는 말이

<<녜, 황송하오나 저것들은 상감께서 전일에 들여다보내주신 그 약을 짜고난 찌꺼기인줄로 아뢰오.>>

물론 이것은 누가 지어낸 우스운 이야기다. 실지 이 세상에서 그런 장정약, 날고기약을 먹어본 궁녀는 하나도 없다. 어림 반푼없지!

그러므로 당나라의 태종황제-리세민이 등극하자 첫 말에

<<3천궁녀는 두어서 무엇 한단 말이냐, 여라문만 남겨놓구 나머지는 다 내보내서 시집들을 가게 하여라.>>

하고 수천명의 궁녀를 일시에 해방한것은 천여년전의 제왕으로서는 영단이 아닐수 없고 또 장거가 아닐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천수백년전 백제가 망할 때, 궁녀들이 적군에게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모두가 백마강 푸른 물속에 뛰여드러 순국한 락화암(落花岩)의 비장한 이야기는 지금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준다. 비단치마자락들을 나붓기며 바위끝에서 하나하나 뛰여내리는, 보지도 못한 그 궁녀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눈앞에 생생히 떠오르군 한다.

사실상 궁녀란 화려한 옷차림을 한 녀종이였다. 그래도 사사집녀종은 비부(婢夫) 즉 종서방이나마 맞아보지! 궁녀들에게는 고만한 복을 누릴 자유도 자격도 다 없었다.

영국력사에도 궁녀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어느해 궁중에서 정변이 일어났을 때 충성이 지극한 궁녀가 국왕에게 피신할 시간을 주느라고 폭도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얼른 중대문을 닫아걸었다. 그러나 내통한자가 미리 치워버린 까닭에 문빗장이 없었다. 궁녀는 서슴없이 제 팔뚝을 대신 들이밀었다. 폭도들이 사정없이 떠미는 바람에 궁녀의 팔뚝은 마침내 와지끈 부러졌다. 하지만 그동안에 국왕은 무사히 궁전을 빠져나갈수 있었다.

정변을 일으킨자나 정변을 당한자나 다 마찬가지 착취계급, 통치계급이니까 어느 편도 동정할것은 없지만서도 그 궁녀의 용기와 충성만은 가상하다고 아니할수 없다.

명나라때, 찍어서 말하면 1542년 10월 21일 밤중에 북경 황궁안에서는 가정(嘉靖)황제 주후총을 암살하려다가 미수로 끝나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였었다. 한데 그런 엄청난 시해(弑害)를 도모하였던것은 무슨 장군도 아니고 또 무슨 대신이나 친왕도 아닌 그저 보통궁녀들이였다. 연약한 소녀들, 바깥세상을 모르고 심궁에 갇혀사는 꽃같은 처녀들-14명의 가련한 궁녀들이였다.

황제를 사자나 호랑이에 비긴다면 궁녀쯤은 토끼나 다람쥐 폭밖에 안되는 보잘것없는 존재다. 그런 티끌같은 존재인 궁녀들이 언감생심 그 무서운 황제를 잡아치우려 들다니! 도대체 무슨 일일 가?

그 열네 궁녀의 이름부터 차례로 적어보기로 하자.

1. 양금영, 2. 계주약, 3. 양옥향, 4. 형취련, 5. 요숙고, 6. 양취영, 7. 관매수, 8. 류묘련, 9. 진국화, 10. 왕수란, 11. 서추화, 12. 등금향, 13. 장춘경, 14. 황옥련.

이상은 다 가정황제의 총애를 받는 조비(曹妃)에게 딸린 궁녀들이다. 물론 조비궁에 매인 궁녀는 이밖에도 또 여럿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 사건과 특히 관련된 궁녀가 둘이 더 있었으니 그 하나는 궁녀장 진부용이고 또 하나는 장금련이라는 보통궁녀였다.

이때 황제가 또 여러 첩중의 하나인 조비한테다만 사랑을 쏟으니 정실인 방황후(方皇后)는 질투가 나서 죽을 지경이였다. 그런 판국에 이번 사건이 조비궁에서 폭발하였으니 조비가 어찌 그 열네명의 궁녀와 함께 릉지처참(목을 자르고 또 몸뚱이와 사지를 토막쳐죽이는 형벌)을 받지 않을것인가!

이날 낮, 황제가 밤에 또 조비궁으로 자러 온다는 기별을 받은 궁녀들이 머리를 한데 모으고 쑥덕공론을 하였다. 주모자는 양금영이였다.

<<어차피 그놈의 손에 죽을바엔 차라리 우리가 선손을 쓰자꾸나.>>

<<옳다, 네 말이 옳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우리 생각두 마찬가지다.>>

<<또 무슨 다른 의견들은 없니?>>

<<없다, 없어. 그렇게 하자.>>

<<하자 하자, 해치우자.>>

이런 엄청난 모의를 한 궁녀들의 나이는 모두 스무살 안팎이였다. 꽃다운 나이였다. 그녀들은 잘 알고있었다-황제를 죽이는데 성공을 하더라도 릉지처참은 면치 못할것이고 또 성공을 못한다면 더구나 릉지처참은 면치 못할것이라는것을.

궁녀들은 모의가 끝나자 곧 행동으로 넘어갔다. 우선 의장개(仪仗盖)에 달린 술(명주실)을 풀어서 줄부터 꼬았다. 황제의 목을 옭아매죽일 작정인것이다.

밤이 들었다.

방탕한 황제가 침대우에서 방탕히 놀아먹고 기운이 빠져서 세상 모르고 잘 때 궁녀들이 행동을 개시하였다. 양금영을 위시한 열명의 궁녀가 일시에 황제를 들이덮쳤다. 서추화를 비롯한 네명의 어린 궁녀 즉 애기궁녀는 후보대원 격으로 언니궁녀들을 도와서 망을 보았다. 맨먼저 하나가 가슴을 타고 앉으면 곧 두손으로 황제의 목을 들이조르니 또 하나는 얼른 그 배를 타고 앉았다. 이와 동시에 다른 두 궁녀는 왼팔과 바른팔을 각각 맡아 눌러서 황제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그밖에도 또 둘이 왼쪽다리와 오른쪽다리를 한쪽씩 맡아 눌러서 황제가 두다리를 버둥거리지 못하게 하였다.

<<목을 더 바짝 졸라라, 늦추지 말아!>>

<<그 줄 이리 다우. 빨리!>>

이리하여 나머지 궁녀들은 재빨리 황제의 목에다 줄을 매였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하지만 너무 서두르는통에 줄이 옭매듭이 져서 황제의 숨통이 아주 끊어지게까지 되지 못하였다. 이런 놀라운 변고를 눈앞에 본 장금련이라는, 우에서 말한 궁녀고자쟁이가 진동한동 달려가 방황후에게 변을 고하였다. 뜻밖의 일에 격동한 방황후는 옷도 바로 입지 못하고 현장으로 달려왔다. 방황후가 침실에 들이닥치며 대뜸

<<무엄한것들, 이게 웬짓이냐!>>

하고 매섭게 꾸짖으니 궁녀 하나가 후닥닥 마주 대들며 주먹으로 황후의 가슴패기를 한대 콱 쥐여박았다. 한낱 궁녀가 감히 황후에게 손찌검을 하다니!

심상찮은 동정에 의혹을 품고 궁녀장(관명-官名)인 총패(总牌라고 한다) 진부용이 쫓아들어오니 애기궁녀 넷이 얼른 그앞을 가로막았다.

사태가 위급해진것을 보자 양금영이

<<어서 불들을 꺼버려라!>>

하고 소리쳤다. 진부용은

<<끄지 말아! 끄면 안돼, 끄지 말아!>>

맞소리르 질렀다. 그러나 애기궁녀들은 듣지 않고 잽싸게 행동하여 침실안팎의 불이란 불은 다 불어껐다. 캄캄한 방에서 진부용이 허둥지둥 뛰쳐나갔다. 파수군을 부르러 간것이다.

급보를 받고 쫓아온 당직장교와 파수병들이 꺼진 불을 다시 켜고 그리고 눈에 사열이 오른 궁녀들을 잡아제친 뒤에 황제의 목에서 줄을 끌러놓으니 황제는 이미 기신을 잃고 다 죽은 사람이였다.

시의들이 의식 잃은 황제를 뉘여놓고 쩔쩔매는 동안에 방홍후는 재빨리 황제의 어명을 위조해가지고 사사로운 분을 풀었다. 눈에 가시 같던 조비에게 이번 시해사건의 주모자라는 억울한 죄명을 들씌워서 열네명의 궁녀과 함께 릉지처참을 해버린것이다.

사경을 헤매는 황제 둘레에 모여앉은 시의들은 겁이 나서 부들부들 떨기만 하였지 아무도 감히 약을 써볼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까딱 잘못하면 제 목이 달아나는 판이였기때문이였다. 나중에 할수없이 시의장 허신이 죽을 각오를 하고 독한 약을 써보았다(약을 안 쓰면 약을 안 써서 죽었다고 할것이고 또 약을 쓰더라도 효험을 못 보고 죽으면 약을 잘못 써서 죽었다고 할것인즉 이러나저라나 황제를 죽였다는 죄를 뒤집어쓰기는 매일반이였으므로).

시의들은 간을 졸이고 손톱여물을 썰며 지켜보는 가운데 미시(未时) 즉 약을 쓴지 칠팔시간만에 황제가 갑자기 왈칵왈칵 죽은피를 게우더니, 한 소랭이 잘되게 게우더니, 비로소 기신을 차렸다.

사후에 시의장 허신은 황제를 살린 공로로 후한 상급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 약을 써놓고 너무 마음을 졸인것이 불치의 병으로 되여서 마침내 그는 죽어버렸다. 놀라죽은것이다.

그런데 이런 전고미문의 시역(弑逆)미수사건은 어찌하여 일어났을가?

오래 살 욕심에 눈이 어두운 가정황제 주후총이 어리석게도 방사(方士) 즉 신선의 술법을 닦았다고 자칭하는 협잡배에게 속아서 장생불로단약(丹药)이란것을 고는데 소녀(숫처녀)들의 몸에서 가장 중난한 곳-유방과 음부를 도려내서 약재로 썼다. 유방과 음부를 도려내면 사람은 물론 살지 못한다. 동무궁녀들의 그런 참혹한 주검을 눈앞에 본 궁녀들은 장차 자기들에게도 들이닥칠 그런 비참한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칼 물고 뜀뀌기로 한번 반항을 해보느냐? 이런 량자택일의 어려운 갈림길에 그녀들은 서게 되였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판에 양금영 등 열네궁녀는 결연히 후자를 택하였다. 장한지고!

그러면 한번 죽을번한 가정황제 주후총은 그후 어떻게 되였는가? 자기의 잘못을 뼈 아프게 뉘우치고 개과천선 다시는 그런짓을 아니하였을가? 천만에!

<<가정 31년 겨울, 8살에서 14살까지의 소녀 300명을 구해들이다.>>

<<가정 34년 9월, 10살 이하의 소녀 160명을 또 구해들이다.>>

<<전부 다 장생불로단약을 고는데 약재로 쓰다.>>

이 몸서리 치는 사실을 기록한 문서는 지금도 북경 고궁안에 고스란히 보존되여있다.

수백명의 어린 궁녀들은 선배궁녀들처럼 반항 한번 못해보고 다 참혹한 죽음을 당하여 가정황제 주후총의 몸보신할 약재로 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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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08.♡.241
타니201310 (♡.163.♡.142) - 2024/05/19 11:33:52

황제들이 독하군요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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