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4-태항산록-(수필)위덕이 엄마

더좋은래일 | 2024.05.09 16:01:38 댓글: 1 조회: 114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7249


수필


위덕이 엄마


위덕이 엄마의 이름은 류설금이다. 강소성 무진현출생으로 해방전 상해 어느 극단에서 배우로 일하다가 항일전쟁시기 무한에서 최채동무와 결혼하였다. 해방후에 낳은 아들의 이름을 위덕이므로 위덕이 엄마가 된것인데 그 위덕이도 인젠 서른여섯살... 위덕이 엄마가 세상을 뜬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위덕이 엄마는 키가 큰만큼 발도 커서 맨발에 남자들이 신는 특대호 흰 고무신을 끌고 바로 이웃인 우리 집에를 놀러 다니군 하였다.

<<위덕이 엄만 웬 발이 그리두 크우?>>

우리 안사람이 웃으면서 이렇게 물으면 위덕이 엄마는

<<글쎄 말이야, 너무 크지?>>

하고 마주 웃는것이였다.

위덕이 엄마는 상해 프랑스조계에서 근 7년 동안 시어머니를 모시고있었던 까닭에 조선말을 아주 잘하였다. 그러나 물론 백분의 백으로 잘하지는 못하였다.

<<해양이 엄마, 나 지난밤에 이상한 꿈이 났다니까...>>

하고 위덕이 엄마가 꿈이야기를 할 때 해양이 엄마라고 불리우는 우리 안사람이 우스워서

<<꿈이 났다는게 뭐요? 꿈을 꾸었지.>>

하고 깔깔거리면 위덕이 엄마는 곧

<<오 참, 꿈을 꾸었는데...>>

하고 사근사근하게 잘못을 시정하는것이였다.

<<해양이 엄마, 이거 좀 먹어보우. 와삭와삭한게 아주 맛있소.>>

위덕이 엄마가 금시 튀긴 기름튀기를 한 남비 담아들고 쫓아와서 이렇게 말하면 해양이 엄마는 또 깔깔거리는것이였다.

<<와삭와삭이 뭐요? 파삭파삭이지!>>

<<오 그래, 파삭파삭... 맛있지?>>

위덕이 엄마는 이렇게 상냥하고 또 다정한 녀자였다.

1938년 가을, 일본침략군의 예봉을 꺾을 힘이 모자라서 항일부대는 일시 무한에서 철거하게 되였다. 그때 위덕이 엄마는 임신 4개월... 남편과 행동을 같이할수 없는 형편이였다. 그래서 남편인 최채는 갓 혼인한 안해를 인편에 딸리여 천리길 머나먼 상해로 보내였다. 상해 프랑스조계에 한번 만나본적도 없는 시어머니와 시동생이 살고있었던것이다.

이듬해봄, 딸을 낳았다는 소식이 와서 최채는 자모(慈母)를 위로하여 살라는 뜻으로 딸아이의 이름을 <<위자>>라고 지어보내였다. 그리고 최채는 중경을 떠나 락양을 거쳐서 태항산항일근거지로 들어가버렸다. 그래서 그 젊은 안해는 남편의 소식을 모르는채 항일전쟁이 끝날 때까지 상해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7년 동안을 살아야 하였다.

한족녀자인 류설금이 조선족시어머니를 얼마나 잘 섬겼던지 90 고령으로 아직도 서울에서 작은아들하고 살고있는 시어머니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아들안부 손자손녀안부 다 제쳐놓고 며느리안부부터 물었었다. 편지에는 로인이 그 며느리를 못 잊어하는 정이 넘쳐흘렀었다. 그래서 로인이 정신적타격을 받을가봐 최채는 아직도 그 며느리가 무고히 잘 지낸다고 속이고 이미 고인이 된것을 알리지 않고있다.

류설금은 일본이 망하자 곧 시어머니를 따라 남조선으로 갔다. 그때 위자는 벌써 일곱살이 되여 학교를 갈 나이가 다되였다. 당시 남조선에서는 공산당을 위시한 각 좌익정당들이 모두 합법적으로 활동하였으므로 류설금은 곧 위자를 데리고 조선독립동맹 서울시위원회를 찾아갔다. 연안과 태항산에서 귀국한 최채의 전우들이 거기서 사업하고있었기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찾아가보니 유감천만하게도 최채만은 거기 있지 않았다. 몹시 딱하게 생각한 조직부장 심성운이 어린 위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류설금에게 물었다.

<<최채동무가 여기는 없는데... 평양을 한번 가보시겠습니까?>>

말이 떨어진 그 즉석에서 류설금은 결심을 표시하였다.

<<녜 가겠습니다. 보내만 주십시오.>>

그리하여 류설금은 일곱살 먹은 딸아이를 데리고 독립동맹의 지하련락망을 통하여 그 무서운 38선을 몰래 넘어 북조선으로 왔다. 평양에는 중국에서 돌아온 최채의 전우들이 숱하였다. 열도 더되고 스물도 더되고 서른도 더되였다. 그러나 꼭 찾아야 할 최채만은 없었다! 이런 안타까울데가 또 어디 있으랴. 류설금은 발밑의 땅이 꺼지는것 같았다.

최채는 조직의 안배로 다른 몇몇 동지들과 함께-주덕해, 문정일 등 동지와 함께-중국에 떨어졌던것이다. 조선을 나오지 못하였던것이다. 남편을 찾아 중국에서 바다 건너 남조선으로, 그 남조선에서 또 천신만고로 38선을 넘어서 북조선으로 온 류설금은 그 북조선에서 또다시 압록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남편을 찾아 가야만 하였다. 생소한 이국땅을 철부지딸아이를 데리고 남편을 찾아 헤매는 류설금...

그러나 류설금은 끝내 남편을 찾고야말았다. 8년만에 안도에서 처자의 소식도 모르고 홀아비로 지내는, 군복 입고 권총 찬 최채를 찾았다. 그리하여 1년후에 태여난 아들이 바로 우에서 말한 그 위덕이다.

해양이 엄마는 지금도 누구나 보면 위덕이 엄마를 산 춘향, 20세기의 춘향이라고 입에 침이 없이 칭찬을 한다. 나도 그렇다.

위덕이 엄마는 얼굴만 곱고 잔잔하게 생긴것이 아니라 그 마음씨 또한 착하고 부드럽고 어질었다. 이 세상에서 위덕이 엄마가 역정을 내거나 불쾌한 언동을 하는것을 본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거짓말쟁이를 가문두지 않을것이다.

위덕이 엄마는 성모 마리아 같이 안존하고 아늑한 녀자였다. 그 막내아들 위광이가 불행한 사고로 저세상으로 갔을 때 나는 마침 먼곳에 출장을 나가있어서 알지 못했었다. 내가 돌아오는 첫밗에 해양이 엄마가 위광이의 불행을 알려서 나는 현관에서 신발도 벗지 않고 그대로 돌쳐나와 위덕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어린 위광이가 내 무릎에 앉아서 내 얼굴을 쳐다보며

<<아버지, 사탕 더 있소?>>

하고 새까만 눈을 깜박깜박하던 일이 생각나서 나는 속이 얼얼하였다(위광이와 그 누나 위영이는 나를 아버지라고 불렀었다). 위광이는 살갗이 맑다 못해 투명할 지경이였다. 그 집 아이들이 다 그 엄마를 닮아서 살갗이 유난스레 맑지만 위광이는 특히 더 맑았다. 그래서 해양이 엄마는 위광이만 보면

<<요 백인종 서양놈아.>>

하고 놀려주었었다.

나의 궂긴 인사를 받는 위덕이 엄마의 얼굴은 평소나 거의 다름없이 안존하고 담담하였다. 사랑하는 어린 자식을 불시에 잃어버린 그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하랴!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렇건만 위덕이 엄마의 얼굴은 고요한 늪 같이 잔잔만 하였다. 잔물결 하나 일지 않았다. 그것은 타고난 천성과 깊은 수양으로 이루어진 높은 경지의 교향시곡이였다.

위덕이 엄마는 우리 집 식구들의 마음속에 언제나 살아있다. 해양이 엄마 마음속에, 해양이 마음속에 그리고 해양이 아버지 마음속에 언제나 살아있다.

추천 (1) 선물 (0명)
IP: ♡.50.♡.92
타니201310 (♡.163.♡.142) - 2024/05/19 10:24:20

위덕이 엄마는 산 춘향, 20세기의 춘향이같습니다

밀린 글 오늘 읽습니다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23,568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나단비
2024-05-20
0
16
chillax
2024-05-20
0
22
chillax
2024-05-20
0
23
나단비
2024-05-20
0
40
나단비
2024-05-19
0
45
나단비
2024-05-19
0
45
나단비
2024-05-19
0
45
chillax
2024-05-10
0
135
더좋은래일
2024-05-10
1
176
더좋은래일
2024-05-10
1
137
더좋은래일
2024-05-10
1
152
더좋은래일
2024-05-09
1
175
더좋은래일
2024-05-09
1
153
더좋은래일
2024-05-09
1
120
더좋은래일
2024-05-09
1
114
더좋은래일
2024-05-09
1
127
chillax
2024-05-09
0
100
더좋은래일
2024-05-08
1
113
더좋은래일
2024-05-08
1
107
더좋은래일
2024-05-08
1
124
더좋은래일
2024-05-08
1
99
더좋은래일
2024-05-08
1
137
chillax
2024-05-08
0
103
chillax
2024-05-08
0
83
더좋은래일
2024-05-07
1
114
더좋은래일
2024-05-07
1
108
더좋은래일
2024-05-07
1
101
더좋은래일
2024-05-07
1
106
더좋은래일
2024-05-07
1
137
chillax
2024-05-07
0
109
모이자 모바일